I. 그리드 패키지 채택 배경 기후변화 대응과 러∙우 전쟁 이후의 지정학적 재편이 맞물리면서, 유럽의 에너지 정책은 단순한 탄소 감축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은 원유∙천연가스의 98%를 수입에 의존하는 등 수입의존도가 높고, 이는 에너지 가격 변동성과 공급망 리스크를 증폭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1 이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EC)는 2025년 12월 10일 전력망을 중심으로 수소와 CO₂ 네트워크까지 포괄하는 통합 인프라 정책 패키지인 ‘그리드 패키지(European Grids Package)’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리드 패키지는 발전 설비 확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온 송∙배전 및 국경 간 연계망을 에너지 전환의 핵심 인프라로 격상시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2 이는 전력망을 단순 부속 시설이 아닌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한 국가 안보 자산으로 격상시킨 것으로 이해됩니다. 지난 10년간 EU 에너지 정책은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에 집중되어 왔으나, 그 결과 현재 500GW 이상의 재생에너지 설비가 계통 접속을 대기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수 회원국이 EU의 상호연결 목표 15%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국가 간 전력 흐름이 제한되고, 이는 지역별 전력가격 격차, 재생에너지 출력 제한(curtailment),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3 집행위는 이러한 병목의 근본 원인을 파편화된 인프라 계획, 인허가 지연, 공급망 부족 등으로 진단하고, 이를 구조적으로 해소하겠다는 입장입니다. II. 그리드 패키지의 주요 내용 1. 유럽 중심의 인프라 구축 그리드 패키지의 핵심은 유럽 내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계획에 적용되는 유럽 에너지망(The Trans-European Networks for Energy, TEN-E) 규정 4 개정을 통한 유럽 차원의 인프라 계획 강화입니다. 집행위는 4년마다 통합 EU 에너지 시나리오를 수립하여 전력∙수소 인프라 수요 평가의 기준으로 삼고, 각국의 계획이 EU 전체 시스템 요구와 정합되도록 유도할 방침입니다. 특히 국가 간 인프라 수요가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프로젝트 제안이 없을 경우에는 집행위가 직접 공모를 실시할 수 있는 공백 보완(Gap-filling) 권한을 도입하여 이행 강제력을 강화하였습니다. 2. 인허가 가속화와 공공이익 우선 원칙 그리드 패키지는 인허가 가속화 지침(Permitting Acceleration Directive) 제정을 통해 전력망 연계,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저장 프로젝트 등에 있어 구속력 있는 인허가 기한을 도입하여, 인허가 기한 5 을 넘길 경우 자동 승인으로 간주하는 묵시적 승인(positive silence)이 적용됩니다. 또한, 전력망 프로젝트에 ‘최우선적 공공이익(overriding public interests)’ 지위를 부여하여 환경∙행정 절차에서의 법적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그리드를 단순한

